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에라리온으로 떠난 사람들

에볼라 대응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2진
정부지원대장 양제현 외무사무관을 만나다

쌀쌀하기도 했고 따뜻하기도 했던 변덕스러운 3월을 보내고 봄이 싱그러움을 더해가는 4월입니다. 많은 사람이 3월의 봄을 만끽하는 동안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땀을 흘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계신가요?

지난 3월 23일 월요일, 군의관 2명과 군 간호사 3명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에볼라(에볼라 출혈열/Ebola hemorrhagic fever/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급성 열성감염)대응 해외긴급구호대 3진이 시에라리온에서 4주간의 의료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014년 12월 13일 에볼라 대응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을 시작한 이래 총 24명의 의료진과 11명의 지원대가 파견된 3개월간의 긴급구호 활동을 마쳤습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 방지를 위해 떠났던 해외긴급구호대의 지원에 힘쓴 정부지원대 2진 지원 대장 외교부 다자협력인도지원과 양제현 외무사무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활동 당시의 참혹했던 현실과 우리 구호대의 노력에 대해 알아볼까요? 뉴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생생한 현지 기록과 안타까운 뒷이야기를 지금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사진 출처 | 외교부 공식 블로그
양제현 외무관과 Friends of MOFA 6th 신겸, 조민지, 김채린, 정소연

Q1. 에볼라 방지를 위해 파견된 해외긴급구호대가 어떤 일을 했는지 간략히 설명 부탁합니다.

A1. 해외긴급구호에 대해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해외긴급구호는 해외에서 대규모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당사국의 자체적인 복구 및 구조 능력 부재할 경우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 재난복구를 위한 우리 인력을 파견하고 지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 파견되었던 해외긴급구호대는 이탈리아의 NGO ‘Emergency’가 운영하는 가더리치 에볼라 치료소에서 에볼라 확산 방지와 에볼라 감염자 치료를 위해 시에라리온 현지의 상황 개선에 노력했습니다.

양제현 외무사무관
사진출처 | 외교부 공식 블로그

Q2. 어떤 이유로 해외긴급구호대 지원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에볼라는 심각한 전염병이기 때문에 현지 파견 근무를 쉽게 결정하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A2. 제가 근무하는 다자협력인도지원과는 업무가 크게 국제기구와의 다자협력과 인도지원으로 나뉩니다. 해외긴급구호대 파견 결정 후 인도지원 담당자들이 파견준비를 하는 데 있어 인력이 부족해 난처한 상에서 저는 인도지원과 직원들을 도와 에볼라 대응 매뉴얼 마련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전에 재외국민보호과에서 신속대응 업무 담당자로 근무한 경험, 실제 현장에서 근무한 경험 등이 있었기 때문에 해외긴급구호대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판단하여 파견 근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초기 무서운 질병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고, 외교부도 누구를 보내야 하는지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질병이 심각한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힘들어서 아무나 파견 근무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교부 입부 전에 국방부에 자원하여 이라크 파병을 간 경험도 있었으며 외교부 입부 후 주이라크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기에 크게 두렵지 않았으며 에볼라도 그런 힘든 상황 중 하나라고 바라보며 선뜻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Q3. 긴급구호 활동 당시 현지(시에라리온)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3. 당시 시에라리온은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하거나 방역 작업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을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외과 수술을 위한 의료 기계가 이탈리아의 NGO가 가져온 1대가 전국에 유일한 시설이었을 정도로 치료를 위한 환경적 측면에서 매우 열악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 해외긴급구호대는 1, 2, 3진으로 나뉘어 파견되었는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하는 시기였습니다. 에볼라 감염 지구를 피해 수많은 시민이 큰 공터에 대피해있는 상황도 있었는데 크고 작은 소요사태가 일어나서 치안 부분에 있어서도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Q4. 긴급 구호 활동을 하는 동안 질병 치료 외에 우리나라 긴급구호대가 겪었던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4. 우리 구호대 1진의 의료 인력 중 1명이 감염 환자를 치료하던 중 주삿바늘에 손이 스치는 고위험 노출 상황에 있었습니다. 즉시 그 대원을 독일로 후송하고 감염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우리 구호대와 정부 관계부처, 국민들의 걱정이 크게 늘었습니다. 함께 에볼라 바이러스 구호 파견 준비를 했던 동료들이 연말연초를 구호본부 사무실에서 보내며 상황에 대처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Q5. 시에라리온의 가더리치 치료소에서 우리 해외긴급구호대가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무엇이었나요?

A5. 앞서 말한 대원의 후송이 가장 어려웠던 일이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현지에서 의료나 지원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치료와 방역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질병 감염 위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중적인 중압감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또, 현지에서의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음식 문제, 물갈이, 더운 날씨, 모기와의 전쟁과 같은 어려움이 있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에라리온은 현지어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한국인 대원들은 생소한 아프리카 영어와 협력하는 이탈리아 NGO 직원들의 이탈리아식 영어 때문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고생했습니다.

Q6. 현지에서 경험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6.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당시 지원대가 의료대가 있는 치료소에서 함께 지낼 수 없어서 외부 숙소에 체류해야만 했던 상황입니다. 시에라리온에 도착한 지 10일쯤 되는 날, 지원대가 묵는 숙소 주위 마을이 에볼라 집단 발병으로 인해 폐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숙소를 옮겨야 했지만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어 그저 동향을 유심히 관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니 대원들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조성되었습니다. 그 숙소에는 다른 나라 대원들도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가 무사했지만, 그때의 불안감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출처 | 외교부 공식 블로그
양제현 외무관과 Friends of MOFA 6th 신겸, 조민지, 김채린, 정소연

Q7. 에볼라 바이러스는 완전한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염환자를 격리하는 것 이외에 어떤 조치를 했나요?

A7. 에볼라 감염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매우 많습니다. 우선 몸에서 수분을 잃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하고 다른 열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는 치료를 해주면 사망의 단계에 이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손을 자주 씻거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만지지 않는 행동이 에볼라를 막는 방법입니다. 또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염 루트와 감염 환자에 대한 격리보호조치가 필요함을 현지인들에게 알렸습니다. 에볼라 발생 국가들에서 대부분 집단으로 감염이 된 원인은 장례 문화에 있다고 합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접촉으로 전염된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은 사람에게 입 맞추는 장례 의식이 이어져 집단 감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격리조치의 경우, 시에라리온 국민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와 증상, 치사율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구호대의 치료가 오히려 사람을 죽였다는 인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에볼라 감염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을 일부러 숨기기도 했습니다. 에볼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부족이 바이러스의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처럼 질병에 대한 무지로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들을 막기 위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대응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알려야 했습니다.

Q8. 지원국으로서 한국이 꼭 필요했다고 느껴졌거나 시에라리온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있을까요?

A8. 함께 대응했던 영국 본부에 가서 에볼라 대응 회의를 하는 것을 보면, 군인들이 잘 배치되어 있고 스크린이 펼쳐지면서 어느 지역에는 에볼라 발생비율이 어떻고 내일 작전은 어떻게 할지에 관한 계획을 논의됐습니다. 거기서 한국에 있는 에볼라 치료소의 동향도 살폈는데 우리는 독자적으로 에볼라 치료소를 운영을 못 하고 영국이 도와준 NGO 치료소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에볼라 대응에 참여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한국과 중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을 시도한 것이고, 국제사회의 공여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사례로서 우리의 에볼라 대응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국제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외부 소식을 통해 한국이 상당한 재정지원을 한 것뿐만 아니라 의료 인력을 파견하여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높이 평가받을 때 우리나라가 필요했으며 시에라리온에서 도움을 준 것이 큰 값어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9. 파견 복귀 이후, 국제 공조에 대해 갖게 된 특별한 생각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9. 우리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구호 활동은 어떤 국가에도 민감하고 고심이 가지 않는 일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파트너 국이었던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국제 NGO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한 나라나 단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다자협력이 앞으로 있을 세계 각국의 재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10. 이번 파견을 통해 외교적 측면에서 한국이 얻은 이점은 무엇인가요?

A10.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외교적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2000년에 제시된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가 2015년에 끝나기 때문에 2016년부터 실행할 새로운 전 지구적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대책과 개입방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이 주도하는 개발협력 방식을 택했는데 현재는 개도국들이 선진국 위주의 개발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번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를 파견해 국제 공조를 실천한 우리나라가 개도국들에게 굉장히 좋은 개발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기성 선진국들보다 우리나라처럼 실제 발전 사례가 되는 신흥 국가들을 통해서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계획이 많이 고무됩니다. 우리도 그 탄력을 활용해서 국제적 차원의 개발이나 협력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향성을 제시를 하는 데 있어 빈 수레와 같이 내실 없는 목소리만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적인 것이 따라가야 하는데 이번 에볼라 대응에 직접 참여한 경험은 방향성 제시와 그에 따른 실천을 동시에 보여준 굉장히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Q11. 국제사회 차원의 인도적 지원, 공조 등이 더욱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 국제협력시스템에 있어서 개선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11. 세계 보건기구에서 에볼라 초기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이 심해졌다는 비판여론이 있습니다. 반면 이번 에볼라 대응에서 기니의 경우 프랑스가, 시에라리온의 경우 영국이, 라이베리아는 미국이 주도했는데 이처럼 지원대상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국가들이 개입한 경우 대응이 더욱 신속하고 효과적이었습니다. 강대국들이 집중적으로 상황 진전에 노력했을 때 에볼라 문제가 많이 개선된 것처럼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사회 차원에서의 재난 대응이 보다 응집력 있고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12. 긴급구호 활동을 마치면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12. 이번 에볼라 대응 파견 근무 전에 아는 분에게 시에라리온에 파견될 예정이라고 말하니,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가는군요. 도움을 준다는 일은 참 훌륭한 일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해외긴급구호대로 파견되어 개인적으로 정말 값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시각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의 해외긴급 구호대 파견 결정 뉴스에 달린 수많은 비판적 댓글들을 보며 이런 분위기에서 파견되는 대원과 가족들에게 부득이한 피해를 막기 위해 파견자들의 이름을 익명처리했었습니다. 또한 얼굴 공개도 하지 못하고 안전한 귀국을 바라는 대규모 환송식과 임무를 마친 후의 환영식을 받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습니다. 우리 대원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하여 에볼라 대응 지원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이 가치 있고 자랑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더욱 확산하기를 기대합니다.

Q13. 현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시에라리온 국민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A13. 현장에서 활동할 때 내가 방문하는 지역들을 안내해주던 운전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 운전사는 자신이 학생이었던 시절에 내전으로 인해 10년간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4명의 자식이 있는데 모두 학교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받지 못한 교육을 자식들은 꼭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한 현실은 고되지만, 현실이 문제라고 해서 그저 주저앉아버린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에라리온 국민들 스스로 미래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여 밝은 시에라리온의 미래를 잘 만들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외교부 공식 블로그
양제현 외무관과 Friends of MOFA 6th 신겸, 조민지, 김채린, 정소연

양제현 외무사무관과의 인터뷰 통해 당시의 긴급했던 상황을 전해 들으며 국제적으로 큰 위기였던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에 있어 한국이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생명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구호활동에 힘썼던 대원들의 수고와 용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번 행보가 가지는 의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찰하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양제현 외무사무관과의 인터뷰 통해 당시의 긴급했던 상황을 전해 들으며 국제적으로 큰 위기였던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에 있어 한국이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생명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구호활동에 힘썼던 대원들의 수고와 용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번 행보가 가지는 의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찰하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외교부 | Friends of MOFA 6th
신겸, tlsruaqnfvo@naver.com
조민지, alswl1545@naver.com
김채린, rlacofls0801@hanmail.net
정소연, mirrorsyj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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