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s Bread

새벽 4시, 밥아저씨의 작업실 불이 켜지면서 어둑한 길거리가 조금씩 밝아진다.
수년간 빵을 만들어온 그의 작업실엔 그 흔한 반죽기 하나 없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빻아온 통밀가루에 잘자란 효모를 넣어 손수 반죽을 시작한다. 전날 과일효모를 넣고 발효시킨 반죽통을 열어본다. 시큼한 냄새가 폴폴 올라온다. 적당하게 부풀어 오른 반죽에 손을 댄다.
그의 하루는 이렇듯 효모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로 시작된다.
기계라곤 오븐과 저울이 전부인 이 작업실에서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를 만나봤다.

한국에서 빵을 만들어 팔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워도우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가 고향이지만, 그곳에서 직접 만들어 먹진 않았어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기도 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사워도우를 일상적으로 먹기 때문에 마트에서 많이 팔았죠.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밥아저씨의 아내는 한국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식으로 먹던 빵을 살 수가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빵을 간식 개념으로 생각하잖아요. 저한테는 빵이 밥인데… 밥처럼 먹던 담백한 빵이 없어서 식사가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먹기 시작했어요. 고향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던 방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만들었죠. 그 당시 저희 부부는 카페를 운영했었는데, 저희가 먹던 빵을 손님들에게 조금씩 내어드렸어요. 맛있다고 좋아하시더라구요. ‘이 빵 더 만들어서 팔아보라’는 손님들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빵을 팔기 시작했죠. 저희가 먹는 빵이기도 하면서 손님들한테 판매하는 빵이기 때문에 장사하면서도 연구는 계속 했어요. 각종 경연대회에서도 인정받은 빵이지만, 좀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계속 공부 중이죠.

*사워도우(sourdough)란?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사워도우 빵은 1849년, ‘골드 러쉬어’들이 밀려들어오고 빵집이 크게 늘어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빵은 워낙 일상적이어서 사워도우(sourdough)란 영어 단어 자체가 황금 채굴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별칭이 될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로 온 빵장이들은 자신들이 구운 빵에서 어딘가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구는 그것이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때문이라고 했고 누구는 인근의 포도 재배 지역에서 가져 온 야생 효모 때문에 빵맛이 바뀐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들이 붙인 사워도우(시큼한 반죽)라는 이름은 그대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부인은 어떻게 만나셨고, 어떻게 한국에 정착하게 됐나요?

제가 한국으로 출장근무를 몇 번씩 왔었는데, 그때 제 친구가 한국인 부인을 만났어요. 한번은 그 부인이 자기 친구를 데려왔었는데, 그 친구가 지금 제 아내예요.
제 아내는 미국사람은 싫다고 두 번째 만남을 거절했었는데, 제가 여러번 구애했어요
이 사람 보려고 한국으로 휴가도 자주 나오고, 국제전화도 많이 했어요. 그 당시 국제전화 요금도 비쌌고, 비행기 요금까지 더하면 거의 한달 월급이 다 들어갔죠.
결국 4월에 만나서 9월에 결혼했어요. 저희 장인어른 반대가 심했죠. 양놈은 절대 안된다며… 근데 이 사람도 한고집 하거든요. 결국 집안 허락은 못 받고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다행히도 저희 부모님은 축복해주셨고 미국에서 두 아들 낳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있죠.

한국에는 87년도에 다시 오게 됐어요. 당시 한국에는 유럽와인만 유통되고 미국와인이 취급되지 않았거든요. 미국와인을 유통해보려고, 사업의 꿈을 안고 온가족이 한국에 건너와 정착했죠. 미국와인 수요가 없었던 건 아닌데, 유통 마진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와인바 사장들은 외국인이 직접 홍보하는 와인이 손님한테 잘 팔린다고 가게로 저를 자주 불러냈지만, 그에 맞는 대가는 못 받았죠.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초기 투자비용을 모두 바닥내고 사업을 접게 됐어요.
그리곤 인천에서 카페를 열고 우연히 빵을 만들어 팔게 된거죠.
한국에서 꿈을 잃었었는데, 이제는 여기서 새 꿈을 얻었죠.

매일 새벽부터 빵을 만드시는데, 굳이 이른시간에 나오시는 이유가 있나요?

크랜베리빵, 건포도빵은 과일 자체의 효모 덕분에 8시간 발효면 충분하지만, 사워도우빵과 통밀빵의 발효시간은 20~23시간이 걸려요. 빵마다 적당한 발효시간에 맞춰 빵을 구우려면 규칙적인 시간패턴이 중요하죠. 부지런하게 확인하지 않으면 잘 자라던 효모들이 죽는 경우도 많아요. 전날 발효시킨 반죽들의 상태를 살펴보려면 이른 새벽부터 움직여야 해요.

시중에 파는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왜 힘들게 직접 빻아온 통밀을 사용하시나요?

이쪽으로 오세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3가지예요. 색깔이랑 가루 입자가 다 다르죠?
시중에 마트에서 파는 밀가루, 빻은 채로 파는 통밀가루, 저희가 직접 빻아오는 통밀가루.
시중에 파는 밀가루는 입자도 곱고 더 하얘요. 제빵성도 좋죠. 반면 직접 빻은 통밀가루가 반죽할 때도 다루기 제일 어려워요. 그렇지만 글루텐 함량, 탄성 차이로 빵을 만들었을 때 확실히 식감이 차이나요. 가격도 직접 빻아오는 통밀가루가 시중에 빻아져 파는 통밀가루보다 3배나 비싸요. 가격이 저렴해도 언제 빻아놓았는지 알 수 없는 통밀가루를 사용하긴 싫어서 매일 신선한 통밀을 빻아서 바로 반죽에 사용해요.

손반죽과 천연효모를 고집하시는 이유는요?

사실 반죽기는 별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에 들여다놓지를 않았어요. 어릴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빵맛도 모두 손맛이었고, 반죽의 수고로움을 귀찮게 느낀다면 좋은 빵이 나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효모 또한 편리하게 상업용 이스트를 사용하면 편하겠지만, 더 건강한 방식을선호해요. 수고롭더라도 건강함이 최우선이예요.
한국엔 밀가루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분들도 우리빵을 먹으면 속이 전혀 불편하지 않대요. 천연효모가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하는거죠. 화학첨가물도 없고 통밀가루 자체도 신선한 곡물을 그대로 사용하니깐. 해로울 게 없는 거죠. 또 천연효모로 만든 빵은 속이 더 부드러워요. 화학적 이스트보다 변질이 더 잘 안 되기도하구요.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재료인 거죠.

 

밥아저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더 맛있고 건강한 빵을 꾸준히 개발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또 베이킹 노하우를 전수하는 아카데미를 계획하고 있어요. 사실 건강한 빵을 만드는 건 어떤 특별한 노하우 보다도 정성이거든요. 반죽부터 발효까지 틈틈이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애착이 없으면 좋은 빵을 만들지 못해요. 저는 그 정성을 기본으로 한 베이킹을 전수하고 싶어요.

자름20150905 소소한인터뷰-3_re

동화 <빵터지는 빵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은 정말 묘하다. 거짓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만, 진실은 사람의 마음을 느리게 움직이니 말이다.’

이 책은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겨 위기를 맞은 동네빵집 박’s 베이커리가 결국 건강한 빵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내용을 전한다.

이름마저 비슷한 양평동 밥’s 베이커리도 3평 남짓 좁은 공간에 간판 하나 없다. 가게 주변은 허름한 카센터와 오래된 저층 아파트만 보인다.
주인부부는 좋은 재료에만 고집을 부릴 뿐. 요즘 빵맛 만큼 중요할 수도 있는 인테리어에는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화려한 간판으로 쉽게 걸음할지라도, 누군가의 발길은 당신의 정성을 향해 천천히 움직일테니까.

기획 및 취재 | 김화정 기자 (story@visualdive.co.kr)   

사진 | 조윤구.    퍼블리싱 | 김인경, 김화정.  디자인 | 이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