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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이’ 남편. 배우 김용림, 남일우 아들. 20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배우 남성진을 떠올리면 두 가지 꼬리표가 붙는다. 대표적 연기자 가족이라 좋은 점들도 있겠지만, 고충도 적지 않을 터. 해서 전부터 사연을 듣고 싶었다. 기회가 찾아 왔다. 남성진이 연극 ‘웃음의 대학’을 통해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쉽사리 인터뷰 요청을 할 수 있었다. “연예계에서 소문난 애주가야. 1차에서 소주 5병을 비워. 근데 몇 차를 가도 안 취해.” 사전 취재 시 만났던 연극 관계자가 혀를 내둔다. 이건 좀 멋지다고 생각했다. ‘취한만큼 보고 싶다’라는 본지 취지와 맞게, 가장 적합한 연기자가 아닐까 싶어서다. 기자 역시 다음날 기절(?)할 각오를 하고 일부러 금요일 밤에 약속을 잡았다. 잊지 못할 ‘불금’이 될까 싶어 살짝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약속 장소인 분당구 서현동 인근에 있는 일본식 선술집에 들어가자 남성진은 이미 제작진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 끝나면 갈증 나잖아. 먼저 마시고 있었어.” 이건 더 멋지다. 남성진과 술 잔을 부딪히며 술에 대한 지론과 배우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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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안주랑 술부터 시켜.”

가방도 풀지 않았는데 메뉴판을 건네는 남성진. 인터뷰를 하러 온 건지, 회식을 하러 온 건지 살짝 헷갈리는 상황이다. 천천히 젖어 들까 싶어, 일단 생맥주 한 잔을 부탁했다. 1차에서 소주 다섯 병을 마신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자 호탕하게 웃는다. “내 인생 3할은 술이 아닐까 싶어. 촬영이나 연습이 끝나고 함께 일하는 배우들, 제작진과 마시는 술은 보약이야. 우리 일이라는 게 팀워크 싸움이기 때문에 자주 술을 기울여야 힘이나. 일 끝나면 술!” 남성진이 말하는 술의 지론은 기승전’술’이다. 이런 맥락에서 불만도 토로한다. 11월 초 개막을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연극 ‘웃음의 대학’ 제작진은 술자리를 자주 갖지 않는단다. “연출가가 너무 바빠서 회식이 거의 없어. 일 끝나면 다들 집이나 회사로 그냥 가는 분위기야. 이래서 기운이 나겠어?” 순간, 위로를 해야 할 듯 해서 맥주잔을 들고 한 잔 들이키자고 청해본다.

자주 먹는 안주와 주종이 궁금하다고 하자 천장을 올려다 본다.
“음… 애주가들이 보통 안주를 안 가리지 않나?”

“나이가 들면서 먹는 양은 줄어들었는데, 한 점을 먹어도 마시는 술하고 어울리는 안주를 찾게 되는 거 같아.” 기름진 중국요리와 고량주, 그리고 차. 남성진이 생각하는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술과 안주다. “요즘 고량주를 많이 즐겨. 중국요리에 독주를 마시는 게 가장 깔끔하더라고. 음식을 적게 먹어도 워낙 기름진 안주라 다음 날 숙취도 거의 없어. 가장 중요한 건 곁들여 나오는 따뜻한 차야. 술을 마시면서 장을 따뜻하게 해줘서 건강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지. 결론은 안주는 기름지게, 도수가 낮은 술 보단 높은, 따뜻한 물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거지.” 애주가인 입장에서 인생에서 반드시 들어야 할 몇 가지 교훈들 중 한 가지 가르침을 배운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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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

항상 고민이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다시 선 계기를 물었다.

배우이자 아내인 김지영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배우 서현철. 두 사람이 이유란다. “지영이가 연극 ‘웃음의 대학’을 출연해보라고 추천하더라. 대본과 연출이 훌륭하고, 이 무대를 통해 내 연기 인생도 한층 더 성숙해질 거라고. 평소 연기자로 많이 배우고 싶은 현철이 형도 함께 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어.” 무대에 서기로 결심은 했지만 남성진은 고민이 많다. 어느 정도 역량을 가진 배우가 아니라면 쉽게 소화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란다. “검열관과 작가라는 두 명의 역할이 1시간 40분을 끌고 가기가 무난하지 않아. 장르 역시 어려운 블랙코미디라 선뜻 도전하기 쉽지 않았어. 겁이 나는 거지… 내가 코미디를 잘 해오던 배우도 아니고 이미지도 그렇고. 관객들도 낯설지 않을까. 작품만을 봤을 때 정말 덤비고 싶은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야.” 입술을 깨문 채 시선을 아래로 옮기더니, 앞에 놓여진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 항상 고민이지.”

진지한 목소리 톤을 이어가는 남성진. ‘연기자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이 된단다. ‘연기고수’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왔고, 배우자 마저 누구나 인정하는 베테랑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연기에 대한 열망이 크다. “연기라는 예술이 이제 조금 보이는 거 같아. ‘무식이 용기다’라는 말이 배우에게 정말 통용되는 게, 어렸을 때는 뭐가 옳고 그른지 전혀 안 보여. 근데 나이를 먹으면서 대사 한 마디를 쉽게 못 내뱉겠어.” 연기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남성진이 정의한 연기는 기술력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감동과 감흥을 받을 수 없는 직업인 거야. 캐릭터에 맞게 완벽한 구현을 해야지. 즉 늘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지금도 대본을 옆에 두고 잠자리에 드시는데…” 군대를 다녀와서 데뷔를 할 무렵에 부친인 남일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단다. 연기자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업이라고. 마지막 잔을 입 속에 털어 넣으며 한 마디를 뱉는다. “뛰지 않는 가슴들은 모두가 유죄야. 열심히 달리고 맥주는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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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살면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는 남성진을 보면서 빌리 밀즈가 떠올랐다. 빌리는 미국 수족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1만 미터 우승을 차지했던 영웅이다. “신은 내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그 삶을 살아간다.”라는 말을 남긴 빌리. 나뭇잎을 떨어트린 나무들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도, 조금씩 밝아오는 하늘도, 어쩌면 모두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까닭도, 또 달릴 수 있는 힘이 남은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뛰지 않는 가슴들도 모두 유죄다.

기획 및 취재 l 김경미 기자
퍼블리싱 l 박정은 . 디자인 l 이현정
비주얼다이브 연예팀 ㅣenter@visualdi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