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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Bubble Bubble / Sweet Love Sweet Dream Bubble Bubble / Love me in a sweet way / 처음 내게 온 그때처럼 / So sweet like a lily / 나만을 위한 사랑 멜로디』

S 기업이 출시한 세탁기 CF광고에 삽입된 유명한 씨엠송인 ‘Happy Bubble’이다. 일명 ‘버블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재즈 그룹 ‘윈터플레이’가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선 누구나 알법한 뮤지션은 아니지만 마니아적인 팬 층이 두텁고 귀에 익숙한 명곡들을 제작해낸, 재즈계 베테랑 그룹이다.

멤버 중 이주한(작곡•작사•트럼펫)은 생후 3개월 때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쌓았다. ‘13세 꼬마 이주한’은 이란에 있는 초등학교 스쿨밴드에서 처음으로 트럼펫을 잡았고, 키보드 연주자가 이끄는 라틴 펑크 밴드 ‘Thalamus’에서 트럼펫 연주가로 명성을 떨쳤다.

늘 두 손에 들린 ‘금색 나팔’을 잠시 내려둬야 할 때가 있었다.
대학교 입시 때다. 연주가 활동을 잠시 접은 이주한은 아버지 바람대로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평범한 캠퍼스 생활을 보내던 이주한은 88올림픽이 열렸던 해, 부친과 함께 낯선 고향을 찾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재즈클럽에서 멈춰있던 ‘뮤지션 타임라인’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단다.

‘20대 청년 이주한’이 들려준 ‘배고팠던 청춘’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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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눈부시지만, 콧등을 가볍게 간질거리는 바람이 좋았던 어느 가을날.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윈터플레이’ 사무실을 찾았다. 민트색을 칠한 출입문을 가진 3층짜리 빨간 벽돌집은 영화 ‘노팅힐’에서 볼법한 유럽풍 건물을 떠올릴 정도로 인상적이다.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커피? 차? 뭐로 할래요?” 먼저 악수를 청하며 맞아주는 이주한. 종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면서 마감을 쳐냈던 기자는 얼그레이티를 부탁했다. 머그잔을 들고 기다란 원목 테이블에 마주한 채 여유로운 인터뷰를 시작했다.

“20대는 자신이 뭐하고 살아갈지 숙제를 풀어야 할 시기죠.
간절했고 배가 고픈 때였죠.”

갓 성인이 된 이주한이 보냈던 청춘을 알고 싶다고 던진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다. 앞서 언급했었지만, 이주한은 대학생 시절 방학을 맞아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친구들과 찾은 전통 재즈클럽에서 우연히 공연을 하게 되면서 다시 트럼펫을 잡았다.

“오랜만에 재즈 연주를 하니까
너무 신이 나더라고요.”

당시를 회상하며 들뜬 표정을 짓는다. 단순히 재미만 있었던 건 아니란다. 90년대 미국과 유럽에는 어느 거리에서나 재즈가 흐를 정도로 재즈 열풍이 불었다. 반면 한국인들에겐 재즈라는 음악 장르는 생소했다.

“국내에도 ‘올댓재즈’라는 문화가 있었지만 극 소수였죠.
당시 재즈 뮤지션들은 열정은 가득했지만 다양한 재즈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전무했어요.”

이러한 상황을 깨달은 이주한은 이루고 싶은 꿈을 갖게 됐단다. ‘청년 이주한’은 대중들에게 재즈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재즈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그때부터 기나긴 굶주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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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부를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고 칭찬을 건네자,
고개를 젓는다.

“청춘을 부르짖고 사지를 뛰어 다니며 배고픔을 달랬어요.
지금도 여전히 배고파요.”

가벼운 한 숨을 토해내며 그간 겪어온 고충을 털어 놓는다.

“솔로 앨범을 여러 장 냈지만 돈은 별로 벌지 못했어요.
트럼펫만 불면 가난해지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기획과 연출을 하려고 결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즈 뮤지션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서
알 릴 수 있을까에 대한 취지로 ‘10+1’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지만,
역시나 재즈를 알리기에는 부족했다가 생각해요.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계속 우울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뮤지션은 계속 굶주리는 거 같아요.”

재즈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획을 그었던
이주한이지만 여전히 배고픔을 호소한다.

이주한은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 온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단다.
새로 꾸기 시작한 꿈에 대해 들려준다.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트렌드에 맞춰 지금까지 닦아온 재즈에 새로운 색깔을 입힐 계획이죠.”

‘윈터플레이’를 결성한 후 줄곧 팝재즈를 고집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한 톤으로 간다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시대에 맞게 재즈 색깔과 방향성을 바꿔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런 고민이 끝나지 않아서 그간 활동도 중단했어요. 행사가 들어와도 거절했고
앨범 발매도 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힘이 들지만, 우선 달라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지금도 무대에 서면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와! 엄청나네.’
라고 탄성을 지르게 할 정도로 발전되고 달라진 음악으로 만나고 싶어요.”

Epilogue

사실, 이번 인연이 이주한과의 첫 만남은 아니다.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조그마한 선술집에서 이주한과 배우 권해효와 함께 술 잔을 기울었던 날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음악과 연기, 그리고 인생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었던 세 사람. 이주한 역시 이미지는 남고 텍스트는 흐릿하다. 그 날 누구와 어떤 안주를 먹었던 건 기억나는데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가물가물 하단다. 대화 말미에 이주한이 지그시 웃으며 말한다.

확실한 건 우연히 모였던 좋았던 사람들과 나눈 추억.
알잖아요? 이 자리를 갔는데 어떻게 저 자리가 되고,
또 저 자리가 이 자리처럼 변해가면서 좋게 아우러지는 거.
좋게… 그날도 그런 날들 중에 하루가 아니었나 싶어요.”

인연과 정을 나눌 줄 아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그런 이주한이 배부르다고, 행복하다고 외치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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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김경미     디자이너 | 이현정     퍼블리셔 | 갈미애     사진제공 l 라우드피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