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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신스틸러

배우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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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암살’.
안옥윤(전지현 분) 어머니는 친일파인 남편과 달리 독립운동을 하는 딸을 응원한다. “내가 자네 앞에서 왜 눈을 감나?”라는 한 마디를 남기며 남편이 보낸 집사에게 죽음을 당한다. 극 초반부에 사라지지만 관객들에게 짧고 굵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다. 역시나 흥행에 성공한 영화 ‘베테랑’. 서도철(황정민 분)형사 아내는 뇌물을 주려고 찾아온 최상무(유해진 분)를 향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나 이거 집에 많은데요?” 눈 앞에 놓인 돈뭉치와 명품백을 휴지 조각 보듯이 내려다보며 똑 부러지게 거절한다. 작은 비중이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역할이다. 작품에서 주연만큼 존재감을 드러냈던 두 인물을 한 배우가 연기했다. 바로 충무로 신스틸러라고 불리고 있는 진경이다.

스크린만큼 텔레비전에서도 친숙한 연기자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맡은 며느리 민지영은 잊을 수 없다. 시댁 식구들에게 할 말 다하는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허점이 많아서 재미를 더했던 캐릭터다.

(출연한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진경이 분해온 수많은 인물들은 머리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극중 비중이 크건 작건 생생하다. 캐릭터마다 혼을 불어 넣고 뿜어내는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줬던 진경. 분명 걸어온 삶 속에도 사연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삼청동 인근 디저트 카페에서 브런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암살(2015) – 안성심 역

영화 <암살> 스틸 이미지 | 사진 제공: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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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토스트와 베이컨, 감자튀김, 샐러드가 커다란 접시 위에 풍성하게 올려져 있다. “아침을 먹고 왔는데도 배가 고프네요.” 포크로 다양한 음식들을 맛 보며 은은한 미소를 띄운다. 그동안 맡아온 역할들처럼 ‘기 센 언니’일 줄 알았는데, 여리고 차분한 분위기다.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낯가림이 심해서 학창 시절에는 아웃사이더였죠.” 친구들에게 말 건네기도 쉽지 않았던 소녀가 배우를 꿈꾸게 된 스토리가 궁금하다고 했다.

“죽지 않으려면 연기를 해야만 했죠.
꽁꽁 숨겨둔 마음을 가상인물이라는
방어벽을 통해 뿜어 내야 하니까요.
연기를 통해 발산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담담하게 말하지만 깊은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오로지 연기 생각뿐이다. 작품을 끝내고 잠깐 쉴 수 있는 시간까지도.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가 연기죠. 맡을 역할이 사진작가라면 기꺼이 카메라를 배우겠지만,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어요. 일이 없을 때는 다음에 맡을 인물에 대해 연구하거나 체력 관리를 해요. 동료배우 황석정이 그러더라고요. 참 재미없게 산다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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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2015) – 주연 역
영화 <베테랑> 스틸 이미지 |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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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성격만큼 신중했다. ‘나는 배우 진경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길어진 가방 끈을 갖게 된 이유다. 진경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시작으로 연극원, 한국예술종합대학원까지 심도 깊은 교육 과정을 밟았다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내공이 다져진 배우로 무대에 설 날만을 바라보며
공부와 연습을 반복했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까지 시간이 길었던 진경. 서른 가까운 나이에 확신이 들었단다. “스물아홉 살(당시 1998년)때 드디어 필드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났죠. 연극배우로 출발했어요. 시작점이 늦어진 탓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현실은 차가웠다. 열정은 가득했지만 작품 수는 현저히 적었고, 연극 무대에 올라도 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단다. “일에 굶주렸었죠. 데뷔 후 10년 간 1년에 한 작품을 간신히 했으니까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흘렸어요.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지…막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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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째 굴러온 당신
2012.02.25.~2012.09.09. 방영

잠시 대학로를 빠져 나와 충무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극만 고집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진경은 방송과 영화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물었다.

“공개 오디션.
아마 30대 중 후반 때죠.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어린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터져버렸어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울컥울컥해요.”

마주친 눈 속에서 당시 상처투성이였던 진경이 보여지는 듯 했다. 한없이 작아진 채 비어있는 느낌으로 마지못해 살아갔지만, 꿈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도 감동했던 걸까. 기회와 행운이 넝쿨째 들어온다. 2011년, 국민드라마로 꼽혔던 ‘넝쿨째 굴러 온 당신’에서 새침하지만 허당기 많은 며느리 민지영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 동안 어쩔 수 없이 눌러왔던 에너지를 뿜어낸다. ‘넝쿨당’ 이후 올해까지 약 30건 가량 작품들을 흡수했다.

“제 인생은 ‘넝쿨당’ 이전과 이후로 나뉘죠.
다작을 할 수 있는 포문을 열게 된 거죠.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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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만큼 인복도 많은 배우다. 한번 인연을 맺게 된 감독과 작가들이 다음 작품에서도 항상 찾아주기 때문이다.
‘넝쿨당’ 김형석 PD도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에서도 진경을 찾아줬다.

“한번 기회를 준 분들이 다시 일하자고 하면
무조건 하겠다고 해요.
다만 함께 하겠다는 이유가 고마움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분들이 제가 맡길 원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탐나는 역할이죠.
그만큼 확실한 대본을 제게 주세요.”

드라마 ‘빠스껫 볼’에서 호흡을 맞췄던 곽정환 감독과는 내년 초 방영될 드라마 ‘동네의 영웅’에서도 인연을 이어 나간다.
이경희 작가와도 남다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참 좋은 시절’에 이어 내년 방송예정인 ‘함부로 애틋하게’에서도 만난다.
“이 작가님이 세 번 같이 하는 배우는 저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뿌듯하기도 하고 그만큼 더 열심히 캐릭터를 연구해야겠다는 사명감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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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끈이 길었던 만큼, 인물 공부에도 상당한 공을 들일 것 같다고 했다. ‘대본은 보물찾기’라며 설명을 이어간다.

“연기는 정석대로 해야 해요.
집필한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죠.
대본을 자주 들여다볼수록 연기력이 달라져요.
보면 볼수록 보물이 나와요.”

한 번 읽으면 1겹, 열 번 읽으면 10겹, 백 번 읽으면 100겹. 막이 생겨날수록 ‘이면이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단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고 의심을 반복해야 하죠. 인물에 대한 확신이 들 때까지 바꾸다 보니까 저도 만족하고 시청자에게도 안정된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의심이 많은 가는 대본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요.” 한 손을 가슴에 얹으며 진심을 전해준다.

비밀(2015) – 김기자 역
영화 <비밀> 스틸 이미지 |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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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물론 내년에도 쉼표는 없단다. 최근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개봉했고,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 진경은 극중 김영호(소지섭 분) 새엄마 최혜란으로 등장한다. 조용하고 우아하며 평생 살림을 천직으로 한 내조의 여왕으로 보여지지만, 남편 회사를 삼킬 계략을 서서히 꾸미고 있는 인물이다.

“12월은 드라마 촬영으로
정신 없이 보낼 계획이에요.
느지막이 인지도가 생겨서
마음이 급한 건가요?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할 계획이에요.”

아직 새해는 오지 않았지만, 2016년 정해진 작품 수도 벌써 4개란다. “조성하 선배도 10년 동안 휴일을 모아봐도 한 달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힘이 닿는 순간까지 연기만 하며 살고 싶어요.”

기획 및 취재 : 김경미 기자
퍼블리싱 : 갈미애 l 디자인 : 김은교
비주얼다이브 매거진팀 l enter@visualdive.co.kr

사진 제공 : 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