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터의 창조력, 파트너십, 그리고 미래의 비전이 성공을 위한 열쇠다”(빌 게이츠).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주목 받고 있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들을 만납니다. 이들의 ‘크리에이티브 내공’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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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춤’으로 핵폭풍급 대박을 터뜨린 싸이 6집, 빅뱅 미니 5집 <ALIVE>.
케이팝 스타로 데뷔한 이하이 앨범 <1.2.3.4> 등 만드는 앨범마다 히트작으로 떠올라
엔터테인먼트 디자인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이가 있다.

주인공은 장성은(40) MA+CH 대표.
살아온 삶에 음각으로 새겨질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 깨달은 노하우를 묶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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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MA+CH를 설립한 뒤 1년은 여러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어요. 공민영(2NE1 공민지의 언니), 존 박, 갓세븐(GOT7) 등 앨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지인들 부탁으로 사무실 인테리어를 도와줬지요. 창의력 분야에 대한 강연도 했고요. 요즘은 DJ바리오닉스 앨범 및 로고 디자인 작업, 영웅재중 DVD 관련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YG 나온다고 했을 때 사람들 대부분이 의아해 했어요. 어떤 뚜렷한 계획이 있어 그만둔 게 아니라, 보다 의미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을 10년 넘게 해오니, ‘이제 해볼 만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명 연예인이 아닌 내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싹텄고요.

무엇보다 해보고 싶었던 건, 가치가 맞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별로 함께 작업하는 일이었어요. 한마디로 ‘해쳐 모여’죠(웃음). 타이포그래피를 잘하는 사람, 일의 과정을 매끄럽게 진행하는 사람 등 각자 강점이 다르잖아요. 이들이 모여 저마다의 색깔을 내면서 같이 작업하면 ‘윈윈’ 할 수 있고, 결과물에 대한 완성도도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사진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 대표는 MA+CH를 통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정직하게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작업도 꼭 해보고 싶다 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비즈니스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좋은 제품만 만들었지, 이를 어떻게 보기 좋게 포장하고 유통하고 팔 지에 대해선 문외한인 경우가 적잖다.
‘비즈니스 디자인’이라면 장 대표의 특기.
특히 비즈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 대표에게 YG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YG에서 일하면서 CD패키지 디자인을 넘어선 영역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가수들을 브랜딩하기 위한 퍼스널 아이덴티티(PI) 구축 작업, 로고, 앨범, DVD, 포스터, MD(관련 상품) 제품 등 디자인을 두루 책임졌어요. 그렇게 한 가수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작업을 총괄하는 가운데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정립된 듯싶어요.

저만의 비밀병기인 ‘프로세스 북’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예요. 포트폴리오가 결과물을 묶은 책이라면, 프로세스 북은 과정에 집중하는 책이에요. CD 디자인 시안, 서체, 글씨크기 등을 세세하게 기록했어요. 프로세스 북을 꼼꼼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다음번에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낼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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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 사장이 삼고초려해 YG에 데리고 왔다는 이야긴 유명하다.
몇 차례 거절했던 이유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중심 역할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점,
앨범 디자인이라는 영역만 다루게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한 분야에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선하고 톡톡 튀는 앨범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장 대표가 디자이너로서 강조하는 건 아이디어다.
왜일까. 이유를 찾으려면 시곗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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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모교인 한동대학교에서 열린 한 캠프에 참여한 장성은 대표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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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무(無)전공 입학제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국제어문을 공부할까,
전공 선택에 고민이 많았죠. 2학년 1학기 때 교양수업으로 ‘산업디자인개론’
과목을 듣게 됐어요. 다른 과목과 달리 밤샘 아이디어 토론을 자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디자인학부 교수님과 전공에 대한 면담을 하는데 그러시는 거예요.
“성은아, 디자인은 예술과 다르다. 그림은 못 그려도 된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요. 그 말씀에
용기백배해서 디자인을 전공으로 택했지요.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 한번 없고
그림 솜씨는 ‘꽝’이었지만요(웃음).

지금도 저는 교수님 조언에 동의해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제 생각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만 조그맣게 그려도 충분했어요.
물론 그림 실력이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그림을 잘 그리면 자기 안에 ‘무기’가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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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반·기대 반’으로 ‘입문’한 디자인 세계. 대학시절 배운 건,
‘디자인 지식’이 아닌 ‘디자이너로서 기본자세’라고 말하며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어느 날 교수님과 학생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어요.
저희는 먹고 싶은 음식을 식판에 한가득 담아왔죠. 늘 남기면서도요.
교수님께서 그걸 보시고 ‘식판 하나도 디자인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느냐’고 말씀하셨죠. 제겐 충격이었어요.”

‘삶과 디자인 작업’이 하나라는 걸 20대 초반 깨달았다면,
첫 회사 지직(GIGIC)에선 ‘디자인의 기본기’를 닦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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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에서 일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프로세스 북’.
장성은 대표는 이 책을 자신만의 비밀병기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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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은 음반 디자인 전문회사인 GIGIC이었어요.
2000년에 입사해 10년간 일했죠. 디자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앨범 디자인 분석‘ 노트와 ’앨범 재료(소재)‘ 노트를 만들었지요. 회사에 있던 CD를 모두 살펴봤어요. 네모 모양 주얼케이스(플라스틱 CD케이스)는 기본이고, 동그란 모양, 이중 커버 등 CD 디자인을 꼼꼼히 기록했어요.

재료 노트에는 시장 조사하면서 알게 된 홀로그램 종이, 벽지, 가죽, 펠트와 같은 소재들을 붙이고, 그 옆에는 업체명과 연락처를 쭉 정리했죠. 어느 시점이 되니 노트만 봐도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GIGIC에서 일할 때 방산시장 등 여기저기 숱하게 돌아다녔어요.
디자이너는 발로 많이 뛰어야 해요.
뛴 만큼 자기만의 독특한 뭔가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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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세스 북’ 내부 모습으로, 2NE1 앨범을 디자인하는 전(全) 과정을 담았다. 다른 작업을 할 때 아이디어의 보고가 된다.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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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IC과 YG를 거쳐 MA+CH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로 일한 지 15년.
쉴 새 없이 이 일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고 빛나게 하는 일이거든요.
온전히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이 컸어요.”

장 대표의 이 말을 듣고선 ‘디자이너’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면 과장처럼 들릴까.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 아래 바이라인을 달 때,
또 영화감독이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새겨 넣을 때 가슴 뿌듯하듯, 디자이너도 그럴 줄 알았다.

물론 장 대표는 자신이 디자인한 앨범이나 물건을 보고
“장성은이 만든 거네.” 하고 알아봐 주면 행복할 거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을 돋보이게 만드는 일’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요, 이 업(業)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문득 디자이너로 ‘음각의 인생’을 산 장 대표에게 CD앨범 하나를 선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동안 ‘검은색 무대 커튼’ 뒤에 있기를 자청했기에 앨범 겉옷은 까만색.
CD 케이스를 열면 찬란한 금빛이 쏟아져 나오도록 디자인하겠다.
‘금빛’은 장 대표 덕분에 빛난 가수들을 뜻함과 동시에 ‘디자이너 장성은’의 존재 자체가 ‘빛’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앨범 타이틀은 <40, 장성은>으로 하되, 반드시 양각으로 새길 것.
마흔, 우직하게 일하지만 주목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에 본격 뛰어든 장성은 대표를 뜨겁게 응원하고 싶다.

에디터 | 정수영      포토그래퍼 | 조윤구     디자이너 | 김은교     퍼블리셔 | 박현원